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경남여자고등학교 교장 박임범

<겨레의 밭>과 영화 <영웅>

지난 2월말 늦깎이 교장 발령 통보를 받고 기쁨보다 더 많은 걱정으로 혼자 이 경남여고를 찾아 왔습니다. 반가운 옛 부산진역 역사(驛舍)와 경남여고 졸업생들의 추억담 속에 회자되던 그 맘보문구도 보았습니다. 곧장 학교 교문을 들어서지 않고 먼저 학교 주변을 한 바퀴 돌아 보았습니다. 수정 산복도로에서 학교 쪽을 바라보며 내가 이 경남여고에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. 마음이 무거웠습니다. 주변 환경, 학교 현황, 명문 학교가 주는 동창회의 무게감까지......
교문을 들어서자 잘 정리되고 아름다운 교정과 함께 청마 선생님의 글 <겨레의 밭>이 보였습니다.
‘청마(靑馬) 선생님께서 이 학교에서 교편을 잡으셨구나~!’
유구한 역사가 느껴졌습니다.
곧이어 이 <겨레의 밭>이 우리 경남여고의 교훈이라는 것을 깨닫고는 ‘의아함’과 ‘고루함’이 더 강하게 느껴졌습니다.
‘모성(母性)이라? 요즘 시대에 아직 이런 교훈이...... 동창회의 힘이 어마어마하구나!’
이 교훈은 한층 더 부담으로 다가왔습니다.

며칠 후 휴일날, 뮤지컬 영화 <영웅>을 늦게 본 아들놈이 집에 오면서 가족들이 다시 영화 <영웅>의 ‘미흡함’과 ‘가치’에 대해 이야기하게 되었습니다. 대화 중에 나는 ‘안중근(정성화 분)이 눈 속의 만주 벌판을 힘들게 걸어가는 장면’과 ‘체포된 후 인간적으로 두려워하면서 고뇌하는 장면’, ‘아들의 수의를 지으며 비통해하면서도, 너는 죄인이 아니니 구차하게 항고하지 말고 기꺼이 죽어라고 편지를 쓰는 안중근의 어머니(나문희 분)’가 생생하게 떠올랐습니다.
‘(안중근이) 어떻게 저렇게 할 수 있었을까?’, ‘나라면 저렇게 할 수 있을까?’
‘종교의 힘일까?’, ‘애국심일까?’, ‘거룩한 분노일까?’......
‘아! 안중근도 안중근이지만 어머니의 힘(영향)이었구나!’
‘청마(靑馬) 선생님의 글이 의도하는 것이, <겨레의 밭>이 추구하는 것이 바로 이것이구나’하는 깨달음이 왔고, 순간 경남여고의 교훈이 고루하다는 생각도 달아났습니다.

우리나라 민족혼(民族魂)의 산실(産室)인 우리 경남여고가 추구하는 바가 이와 같고, <겨레의 밭>을 암송하는 동문들의 마음이 한결같다면, 남은 교직 2년을 이 경남여고에서 마무리하는 것도 매우 보람될 것으로 믿고, 조용히 조금만 열심히 해 보려 합니다.
개교 100주년을 눈앞에 둔, 제96주년 총동창회 정기총회에 즈음하여, 나라를 지키시고, 잃었던 나라를 되찾게 해주시고, 곳곳에서 나라를 바르게 이끌어 오신, 그 수많은 겨레의 영웅들을 키워 낸 ‘어엿한 모성’인 경남여고 동문님들께 고개 숙여 감사를 드립니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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