경남여고 발자취
교훈
광복 전 학교 설립 당시의 교훈은 "한자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." 였으며, 광복 후 오상호 교장 재직 시(1956년경)에는 "씩씩하게, 굳세게, 바르게" 였고, 심양섭 교장 재직 시(1958년)에는 "근검하고 관대하여라, 봉공정신을 가져라, 의뢰심을 갖지 마라." 였다. 그 후 청마(靑馬) 유치환 교장이 부임하여(1963년) "겨례의 밭" 이라는 제목으로 교훈을 정해 지금까지 수정동문에게는 일생의 교훈으로 회자되고 있다.교훈내용
억세고 슬기로운 겨레는오직 어엿한 모성에서 이루어 지나니
이 커다란 자각과 자랑에서
우리는 스스로를 닦는다
교복
교복은 "경남여고"의 상징이자 학교에 대한 소속감의 원천이며, 동시대를 함께 보낸 친구와의 추억이다. 또한 시대의 흐름을 알 수 있는 작은 역사이다. 개교 초기의 순박한 치마저고리부터 100m 미인이라 불릴 정도로 예뻣던 60년대 교복, 평준화와 함께 부산시 전 여학교가 착용한 70년대 교복, 이후 교복자율화를 거쳐 현재의 새롭게 제정된 교복에 이르기까지 교복의 변화 과정에는 한 시대의 문화와 역사가 꼼꼼히 드러난다.교표
1927년 개교 당시 교표(①)는 푸른 파도 위에 붉은 태양이 빛나는 모습으로 파도 위에는 "菁高女"라는 은색으로 글자를 넣었다. 1938년경부터 사용된 교표(②)는 "高女" 라는 두 글자를 썼다. 이 도안은 방순경 교사가 도안한 것이라 한다. 광복 이후인 1945년 11월 7일부터는 "고항녀"라는 한글을 도안화(③)하여 금속제가 아닌 수를 놓아 사용했다. 1946년 지금과 같은 "경남" 교표(④)가 고안되었는데, 이 글씨체는 당시 본교교감이신 금수헌 선생님의 도안이라고 한다. 1948년부터 현재와 모양이 같은 교표(⑤)가 사용되었다. 1951년 "부산제일여자고등학교"로 교명이 바뀌면서 비둘기가 비상하는 모습에 "일고"라는 단어가 자리잡고 있는 교포(⑥)가 사용되었다. 1953년 교명이 "경남여자고등학교"로 바뀌면서 다시 현재의 교표(⑤)를 사용해 오고 있다.교지
1932년에 5월에 창간된 교지는 1932~1933년에는 "한자를 알아 볼 수 없습니다." 로 2호까지 발행되었고, 1943~1956년에는 "白悔"로 5호까지 발행되었다. 1956~1966년 까지는 "경남여고"로 1~10호까지 발행되었고, 1967~1980년까지는 "한자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."로 11~24호까지 발행 되었다. 1981~1995년까지는 "白悔"로 발행되다가 1996년 6월 다시 "한자를 알아볼 수 없습니다."로 바뀌어 오늘에 이른다. 교지 외 학교의 다양한 소식을 전하는 학보 "학교 소식"과 "경남여고"가 있고, 특호집인 "문예신문"도 있다.